2020. 8. 9. 13:52ㆍ@ VAR관련 기관
PDCA 기반의 리스크관리
제1장 과학은 불신과 비판으로 시작한다
김용표 K-Risk 운영위원
1. 사람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인가?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인간의 경제활동은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기심과 다른 것으로 ‘체계적인 계획과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러한 인간을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 표현하였다. 즉 애덤스미스는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시장은 이러한 인간의 합리성에 의해 효율적으로 가동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시장은 시장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인간의 합리성 가정은 고전경제학 이론의 기본전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인간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시장 자유주의는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힘을 잃게 되고 국가가 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케인즈 학파의 경제이론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쇼크 등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며 케인즈 학파의 경제이론은 또 다시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기본전제는 사람은 자신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준 선택보다 나은 선택을 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중심에 있던 시카고 대학의 많은 학자들은 세계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로 29명의 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신자유주의 논리도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처럼 경제학 이론은 어느 것도 현실에 정확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론과 현실은 괴리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한계에 대해 일단의 경제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감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이유와 편향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랫동안 인간이 살아가면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여 논리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1970년대 실험 심리학 분야의 발전으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증거는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 (1937-1996), 대니얼 커너먼(1934-)으로 대표되는 심리학자들은 보편적 인적 오류로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전망이론, 편향, 휴리스틱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데니얼 카너먼은 2002년 심리학 실험방법을 이용하여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공로로 심리학자로서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지심리학 이론은 인간의 실제적 행동과 경제를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의사결정과정의 비합리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경제학 분야에서의 이론적 한계를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후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의 학제 간 연구의 뛰어난 성과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기존 연구의 한계를 돌파하는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프로젝트 리스크관리 분야도 순수이론 및 방법론에 치중한 연구의 한계는 리스크관리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생각하는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적 접근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ISO 31000 : 2018에서 리스크관리 체계의 필연적인 불완전성을 받아들이고 지속적 개선을 중요시하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PMBOK®(2017)에서는 사람의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오류, 불완전한 지식을 리스크에 포함시키고 있다. 즉 리스크관리에 핵심으로 사람 리스크가 대두되고 있다.
건설프로젝트는 매번 계획이 다르고 수행방식이 다르며 수행자가 다르다. 또한 동일한 공사가 있다 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계획이 수립되고 수행되어진다. 정해진 규정은 없으며 개인의 경험이나 정보, 과거사례를 바탕으로 현장 특성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각각 창조한다.
예를 들어 지반굴착을 계획하더라도 각각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굴삭기 용량의 크기가 다르며, 장비조합이 다르게 계획될 것이다. 누군가는 1.0m3 용량의 굴삭기와 15ton 덤프트럭을 조합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1.3m3 용량의 굴삭기와 도자, 25ton 덤프트럭을 조합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의 차이가 결코 작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일단 구축된 시공 시스템(장비, 인원, 자재, 프로세스 등)은 효과에 대한 검증이 쉽지 않으며, 기술자들의 자존심으로 방법의 변경을 꺼려한다. 변경을 한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한 번의 잘못된 계획이 회복하기 어려운 실패를 불러오기도 한다. 또한 시공과정에서의 정보수집을 통하여 각종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실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장비조합을 계획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몫이다. 개인적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판단하거나, 자신이 없으면 판단을 전문가나 집단의사결정 방식에 위임하여 수행한다.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시스템을 도입하고 프로세스를 구축한다고는 하지만 모두가 껍데기일 뿐이며 그 안의 알맹이는 결국 사람에 의해 채워진다. 단지 교묘하게 위장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사람에 의해 행해지며 인간의 합리성에 의존한다.
여기서 인간이 합리적이지도 프로젝트 지향적이지도 않다면 가장 큰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리스크관리의 시작은 인간의 지식과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는 만큼 알고 있는가?
“인간은 천재적이면서 서툴고, 명석하면서 어리석다.”
코넬대학의 프랭크 케일은 사람들이 안다고 믿는 정도에 비해 실제로 얼마나 아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설명깊이의 착각” 을 고안해냈다. 이는 단순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설명해보라 하는데서 사람들이 스스로 알고 있다는 착각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지식의 본질과 원리를 쉬우면서 구체적으로 누구도 알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장에서 접하는 문제들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예를 하나 들어본다.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였다고 가정하자. 어느 정도 지식과 경험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원인을 확인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추락방지 난간이 없었다든지, 안전벨트 미착용 등 직접적인 원인과 관리자의 점검누락, 위험을 작업자에게 교육하지 못한 시스템상의 문제 등 간접적인 원인으로 설명할 것이다. 또는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의 복합적 문제로 설명하기도 할 것이다. 대책으로 추락방지시설을 보완하고, 점검 시스템과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확인과 대안수립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실천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왜! 안전사고는 줄지 않고 유사한 사고가 계속되고 있으며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대책이 현장에서 실행되지 않느냐? 라는 한 가지 질문을 더 한다고 해보자. 이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에 두 번째 질문에 안전의식이 부족하고, 공기와 원가만 신경쓰다보니 안전은 뒷전이었다는 설명을 하였다면 전문가의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다.
공기를 준수하고 원가를 절감하고자 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당연히 추구하는 목적이며, 공사관리를 잘 수행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공기에 여유가 있었다면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안전의식이 부족하였다면 수준에 맞는 안전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어야 했다. 수많은 점검에서는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이처럼 안전사고의 문제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의식, 역량, 시스템, 관리감독, 원가, 공기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안전사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문제는 복잡한 상호관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발표되며 거창한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오히려 특별하지 않은 사소한 우연에서 시작한 것도 있다. 즉, 우연히 발생한 것을 지나치게 원인과 결과로 해석함으로써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그동안 건설재해를 예방하고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신통치 않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설산업의 생산성이 그 많은 노력에도 향상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모든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극히 부분적인 일부만 알고 있으며 대부분 미미한 양의 정보만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단편적인 정보의 조각들을 연결할 뿐이며 그저 이해한다는 막연한 느낌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준은 못 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누군가가 복잡한 사실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 지식을 비판 없이 각자가 유리하게 활용하며 판단의 근거로 제시한다. 사람은 피상적인 지식의 조합으로 자기가 옳다고 확신한다. 또한 익숙함, 편안함, 자신들만의 논리적 일관성으로 어떠한 믿음을 신뢰한다. 하지만 생각하기 편하고 이야기에 일관성이 있다고 해서, 확신하는 믿음이 진짜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이러한 믿음과 확신은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착각을 가져온다. 이러한 착각은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과정에서의 잦은 변경을 무능함으로 인식하게 하는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온다.
인지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발생했던 결정적인 사고의 82%가 사람의 생각의 실수에 의해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아는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믿음과 확신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아는데서 시작하며 다른 생각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함께 공유하고자 할 때 우리는 알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3. 사람들은 보여지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싶은 대로 본다
“사람은 실상을 바라보는 대상 위에 영혼의 얇은 막을 무의식적으로 덮어씌운다. 그 얇은 막이란 어느 사이엔가 성격이 되어버린 습관적인 감각, 찰나의 기분, 다양한 기억들의 편린들이다. 풍경위에 이러한 막을 얹고, 막 너머를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즉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란 이미 그 사람의 일부다” -니체-
우리는 오랜 기간의 지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생성된 직관과 직관을 검증하는 심사숙고의 기능을 활용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직관과 심사숙고 기능은 잘 작동되며 대체적으로 잘 들어맞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잘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복잡한 상황이나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 착각을 불러오는 상황에서는 직관(휴리스틱)과 심사숙고의 상호작용에 오류가 발생한다. 직관적인 판단은 개인적 경험과 지식으로 생성되며 따라서 편향될 수 있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직관의 오류를 심사숙고를 통해 통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할 심사숙고는 인간의 게으름과 집중력의 부족, 자신의 직관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심사숙고가 직관을 통제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한다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복잡함이 더해질수록 그 경향이 뚜렷하다.
사람은 처음 느낌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러한 직관은 우리에게 내제되어 있는 많은 편향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인지적 편향은 수백 가지에 이르고 있으며 우리들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 휴리스틱과 편견
소수의 표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려한다.
우리는 소수의 결과를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몇 번의 성공과 실패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경우 종종 우연일 수 있으며 실패와 성공이 직접적인 능력과 관계없는 다양한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속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수 법칙 신봉자처럼 행동한다. 더욱 많은 표본을 수집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분석 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 소수의 사건에 사람들은 어떤 패턴이 있을 거라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본다.
결과는 초기에 입력된 기준 값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무엇을 예측할 때 임의로 제시된 기준점은 모르는 사이에 암시의 역할을 하게 되며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그때그때의 주어진 기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기준점의 근거는 언제나 철저히 분석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기억하기 용이할수록 강하게 다가온다.
내가 경험한 내용이 강하게 다가온다. 자주 접하게 되는 내용을 실제보다 더욱 과민하게 받아들인다. 최근의 사건들이 더욱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편향은 통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리스크를 매우 민감하게 인식한다. 또한 강하게 인식된 경험은 부정적인 시각을 키우며 그 크기가 빈도를 과장하여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판단한 원인과 사례를 많이 제시하도록 하면 할수록 판단의 자신감이 없어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주어진 상황의 문제점을 많이 제시하게 할수록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 주제를 잘 아는 초보자일 때, 권력이 있을 때, 직관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이 회상 내용보다 회상용이성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회상용이성에 치우친 리스크 평가는 각종위기에 대응하는 방식, 프로세스, 비즈니스선택에 잘못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편향은 가장 위험한 부분을 해결하기 보다는 위험해 보이는 쪽으로 해결하려는 가능성이 높다.
대표되는 이미지에 의해 판단한다.
직원들을 채용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의 적임자를 찾을 때 우리는 규정되어진 이미지에 적합하면 적임자로 판단하는 오류에 빠진다. 예를 들어 점잖고 잘 생기고 근엄해 보이는 모습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검증없이 리더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잘 생기고, 점잖고, 근엄해 보이는 태도가 현 상황의 리더에 적합하다는 어떠한 통계적, 합리적 근거가 없는데도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정량적 근거를 가지고 결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저율을 기준점으로 사용하며, 가지고 있는 증거 검증력을 의심해야 한다(우리는 그렇게 치밀하게 증거를 검증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온 과정, 환경, 유전적 요인 등 다양한 차이는 생각의 차이를 가져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려는 불편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주장하려 하거나 당위성을 이해시키려 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은 무모해 보이며 이러한 노력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면 성공하기가 어렵다.
4. 익숙함과 인지적 편안함 그리고 논리적 일관성이 과신을 만든다
‘저마다의 논리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신념을 가진 사람은 생각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다.’
편안함과 논리의 일관성은 믿음과 신념이 진리라는 과신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과신은 우리의 지적능력을 과대평가 하고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는 편안함이나 논리에 일관성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내가 옳다는 정보를 찾아서 논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서로 다른 의견이라도 논리는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논리적 증명은 신념을 양산하여 진리에 접근하는데 소모적인 마찰과 논쟁을 가져온다. 진리는 산출되어지는 결과들에 의해 확인된다.
이해착각
“우리는 종종, 엄숙하고 거만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자가 하는 말을 앞뒤 재지 않고 그대로 납득해 버린다. 반대로, 주장의 근거와 이유를 상세히 말하는 이에게는 오리려 불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말하자면 사람은 인상의 강약으로 최초의 경솔한 판단을 한다.” –니체-
우리는 학습을 통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미래의 문제는 처방만 하면 즉방으로 듣는 즉효약이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다. 오직 확실한 것은 “최선을 다했으며 행운의 여신이 도왔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과거를 설명하는 조잡한 이야기를 꾸며놓고 그것이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속인다. 또한 보이지 않는 이면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어버리고 그것이 전부인 양 받아들인다. 지나간 사실에 대해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세상을 인지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인간의 문제는 뭔가를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실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으며 단지 현실을 깊이있게 관찰하는데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사후(事後)에 자신의 예측을 과장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으며 잘못된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그 당시에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사후판단 편향). 이러한 편향은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보호를 위해 과다하거나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결정적 요인을 명확하게 언급한 글을 읽고 싶어 하고 착각일지언정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성공과 실패는 명백해 보이지만, 그 판단은 사후 판단일 뿐이다. 미리 알 수는 없다. 성공적인 결과였지만 어리석은 결정에 운이 따른 경우도 있으며, 실패하였지만 과정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였을 수도 있다. 지나치게 성과와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적용하려는 노력보다는 항상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관찰하며 개선하려는 창조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묘수를 바라는 게으름이 결국은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된다.
타당성 착각
“고슴도치는 확실한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답답해한다. 확신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논리로 내 의견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너무 많으며 다 그럴듯하다. 그래서 논쟁으로 볼만하며 시사거리가 된다. 그러나 여우는 그런 하나의 이론이 없다. 그들은 복잡한 사상가이며 무수하게 많은 작용으로 결과가 나오며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들은 시사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의견에 확신이 있다면 이는 직관과 심사숙고의 결과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종종 이때 증거의 양과 질은 중요하지 않으며 작은 결과를 크게 확대하여 판단한다. 또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면서 깊이없는 피상적인 내용으로 판단을 타당하다고 착각한다. 예를 들어 현장의 공정관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관리되고 있다하여 공정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예측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말한다.
타당성 착각은 전문가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어떤 분야를 조금 더 아는 사람은 그보다 덜 아는 사람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예측을 한다. 그런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착각해 비현실적으로 자신만만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문가의 복잡성에서 벗어나는 단순한 공식을 만들어라.
“예측의 정확도를 극대화하려면 최종 판단은 공식에 맡겨라! 타당성이 낮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데니얼 카너먼-
전문가들은 전문가스럽게 보이려는 노력으로 종종 복잡하게 조합해 예측을 내놓으며 사람들은 막연하게 복잡한 절차를 통해 나온 결과는 신뢰도가 높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복잡함은 타당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인간은 복잡한 정보를 가지고 빠른 판단을 내릴 때 변덕이 심하며 판단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현장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은 단순화되어 실시간으로 수행 가능해야하며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현실감각이 없는 낙관주의는 위험하다.
“비관론자들은 모든 기회에 숨어 있는 문제를 보고, 낙관론자들은 모든 문제에 감춰져 있는 기회를 본다.” - 데니스 웨이틀리-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실패의 두려움과 실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하며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주려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경우 가능하면 많은 리스크를 보여주어 어려움이 많은 프로젝트이며 실패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적절하게 자신의 유능함을 표현하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이처럼 자신의 유능함을 과신하는 경향은 전문가 그룹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과신하지 않는 전문가를 사회가 냉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경제대공황 등 지속되어온 전문가의 과신에 따른 값비싼 대가는 전문가 낙관편향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낙관주의가 축복이 되는 경우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을 때이다. 비관적인 생각과 예측들이 구성원들 내부에 있지 않고 밖으로 표출되고 수렴될 수 있다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예를 들어 그 조직이 중요한 문제를 최종결정하기 전에 최종결정안이 1년 뒤에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상상하고, 그 참담함의 내력을 적어보게 함으로써 비관적인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검토되어 지도록 하는 것은 낙관편향에 취약한 계획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5. 경험의 오류
“경험에 대한 분석과 검증이 없이 의식 속에 고착화 되었다면 경험은 제거해야할 쓰레기(waste)다.”
우리의 경험은 기억에 의존한다. 그러나 경험과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통의 경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험에서 실험참가자들의 고통의 수준을 기억하는 데에는 고통의 유지시간은 무시되었으며 마지막 순간에 고통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었다. 즉 강하게 남는 기억으로 경험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고통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였다면 다르게 평가되었을 것을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 고통의 수준이 왜곡되게 판단되었다.
의사결정에 경험이 중요한 판단기준일 경우 기억은 엉터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경험의 이해는 개인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며 시간이 지난 후에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는 교훈이 미래의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보장은 없다. 경험이 발전의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과정의 경험들이 오롯이 존재되도록 객관적 관찰과 기록, 평가가 있어야 한다.
또한 많은 경험이 익숙함으로 다가와서는 안 된다. 충실한 경험은 매번의 경험이 비판적인 사고와 접목되어 새로운 마주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방식대로 교육과 훈련에 의해 습득된 내용을 경험을 살려 활용하고 해석하는 것은 여러가지 능력이 원숙해진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따라서 그 경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저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한 것으로 인식하는게 타당하다.
- 1. 그들의 경험이 편협하거나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2. 경험에 대한 해석이 정확했다 해도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관습은 관례적인 환경과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지지만 우리의 환경과 상황 속에서는 일상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 3. 관습이 우리에게 좋고, 적당한 것일지라도 관습을 다만 ‘관습’으로 따르게 되면 사람이 가진 고유한 천부재능 중에서 어느 것도 교육하고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6. 전문가의 전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인하라
“많은 기만이 논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제시되고 있다(지적사기).”
“전문가라면 그들의 전문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한번 살펴봐야 한다. 전문가 의견이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권력을 탓하지 않는다, 대신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비난에 쉽게 반응할 것을 공격한다(긍정의 오류).”
전문가는 자신의 전문성이 다른 이와의 전문성과 배치될 경우 소통을 거부하는 측면이 강하며, 이러한 폐쇄적 성향은 전문가 집단이 민첩하게 형성되는 것을 저해한다. 또 전문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로 인해 어떠한 현상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종종 객관적이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 처하지 않으며 사적이해를 추구하지 않는 독립적 개인들의 판단이 더 믿을만하고 객관적일 수 있다.
실재로 전문가들의 권위를 급격하게 높여주었던 과학혁명도 기존의 학문영역에서는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 지식이 축적되고 있었던 영역들에서 힌트와 영감을 얻어 생산된 지식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Shapin, 1996). 이들은 대중적인 지식에 타당성과 논리를 부여한 것일 뿐 지식 그 자체를 생산한 것은 일상에서 자연과 직접 접촉했던 대중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폴 슬로빅은 리스크에 대한 전문가 의견과 일반인의 의견이 상충할 경우 당연히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양측은 상대의 혜안과 지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전문성의 토대가 되는 잠재적 위험은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반박한다. 잠재적 위험은 우리 정신이나 문화와 동떨어진 저기 어딘가에서 측정되기만 을 기다리지 않는다. 인간은 삶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와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 ‘잠재적 위험’ 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삶에서 실제로 위험한 요소들이 있지만 ‘진짜 잠재적 위험’이니 ‘객관적 잠재적 위험’이니 하는 따위는 없다. 위험의 평가는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슬로빅은 위험성 평가를 겁박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의견에 캐스 선스타인은 대중 영합적 정책(회상용이성 이론에 의해 실제보다 부풀려진 위험에 과한 비용을 투자하는)에 반대하는 보루로서 전문가의 역할을 옹호한다. 또한 위험 측정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과학과 전문성, 그리고 심사숙고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비합리적 두려움과 회상용이성의 문제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전문가 집단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7. 신념, 관습에서 벗어나라.
위대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모든 일에 회의를 품는다. 신념에 가득찬 사람은 필연적으로 나약한 사람이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자가 신념을 만든다. -니쳬-
신념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을 영웅시한다. 자신이 평생 지켜왔던 신념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버리지 않고 지키는 것을 절개와 연결시켜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것처럼 교육받아 왔다. 따라서 신념을 버리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배신자로 낙인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시대 이교보다 이단에 대한 응징이 더욱 무자비 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고 있으며, 지금 까지도 종교적, 사상적 신념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람의 뇌에 그릇된 신념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신념은 종종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소수의 안위를 위해 존재할 때 신념은 더욱 광범위하며 강력하게 강요된다.
더욱이 오랫동안 강한 신념으로 굳어져온 관습에 대해 그러한 신념을 고수하던 사람들이 사라진다 해도 조직에서는 그 신념이 불문율처럼 내려온다. 즉 집단의 판단이 내면화되었다면 의심하지 않는다. 그 본질적인 임의성에서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른다(넛지).
왜 그럴까?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위안이 되기 때문에 매달린다. 사람은 진리를 찿는 고통보다는 그동안 믿어왔던 신념에서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어하며 위안을 찾고 싶어한다.
더불어 이전의 신념이나 관습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기득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설령 문제점을 인지하였다 하여도 공론화 하기 쉽지 않다. 특히 보수적이며 위계적인 조직에서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도 오랜 경험을 통해 다양한 관습과 신념들이 있다. 안전하게 공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가나 공기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믿음, 점검을 많이 하면 개선 될 거라는 믿음, 자원이 많이 투입되면 공기가 단축된다는 믿음, 선진 시스템이 도입되면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믿음, 4차산업혁명이 건설산업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 가치라는 믿음 등 수없이 많은 근거 없는 믿음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이런 근거 없는 믿음이 신념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그러한 내제화된 신념을 이용하고, 그러한 신념을 근거로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이 옳다는 정량적 결과물은 제시하지 못한다. 전적으로 신뢰할 만 한 믿음은 없다. 반드시 의심하며 확인하고 그 결과는 객관적인 숫자로 확인되어야 한다.
신념이나 관습은 이전 누군가의 경험, 성찰, 가끔은 이해관계에 의한 기만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경험과 성찰의 합리성이 지속될 수는 없다. 따라서 신념이나 관습에 대해 우리는 체계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검증해야 한다. 신념을 정신적 이념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믿고 있는 신념을 온 정열을 다해 사용하여 실천하고 확인 하는데 있으며 이러한 행동으로 지키고 있던 신념을 뛰어넘을 때 신념은 가치가 있다. 신념은 디딤돌이지 반석이 아니다. 따라서 신념이나 관습이 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고 있다면 개선은 요원하며 수많은 노력이 부질없어 진다.
8. 권위에서 벗어나라.
권위는 그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힘을 가진다. 그러나 역동적인 현장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만한 이론은 없다. 상황을 판단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권위에 매달리고, 권위를 내세우고, 권위가 바람직하다고 믿는 것은 생각하고 창조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위의 옹호자들은 창조하며 살아갈 힘을 소진한 사람들이며 이는 창조적 발전을 가로막는 음험함이다. -니체-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독창적인 생산방식인 TPS(Toyota Production System)를 발전시켜 건설산업에 도입한 Lean Construction, 소프트 웨어 개발방법론으로 주목받던 Agile 방법론을 건설산업에 적용한 Agile Construction, 프로젝트 관리방법의 획일적 적용의 문제점을 제시하며 다양한 상황에 맞는 조합을 강조하는 Hybrid Construction등 다양한 건설사업관리 방법론들이 많은 학자와 현장 연구자들에 의해 제안되고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학회가 설립되고, 연구집단이 생겨나면서 개별적 이론의 장점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제시하였으며, TACT, LPS, VSM, PPS, Scrum, Kaban등의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되었다. 전통적인 공사관리 방법에 혁신과 변화를 가져오며, 건설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론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연구와 현장 적용에도 현실적인 결과는 미흡하다.
린건설, 애자일 건설은 기본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린건설은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 시간, 노력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생산 시스템의 설계(Koskela)라 정의하며, 린의 진정한 혁신의 완성은 기존의 문화를 바꾸는데 있다고 하였다. 또한 애자일 건설을 애자일(좋은 것을 최소의 비용으로 신속하게 만들어 내는 것)스러 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 전체를 일컫는다 하였다. 다시 말해 린건설, 애자일 건설 모두 철학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방법론의 창조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렇게 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중요시 하지 않다. 다양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해보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것도 좋더라 하는 하나의 예시를 제시 한 것이다. 따라서 권위를 가질만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없으며 획일적 방법론이 권위를 가진다면 이는 공사관리 이론의 근본적인 개념과 철학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근본원리와 철학을 이해하기 보다는 습득하면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에 치중하여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방법론이 절대적 이론으로서 권위를 가지면서 활용되고 있다. 본질도 모르고 상황도 모르면서 누군가 만든 방법론을 따라한다는 것은 잘 달리는 기차만 보고 그 바탕에 있는 레일은 보지 못하여, 일반도로에도 기차가 잘 달릴거라 믿는 것과 같다.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도 ISO, PMBOK, PRINCE, ERM등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질을 확인하면 궁극적으로 PDCA 싸이클에 입각하여 잘 관리하라는 의미이며 현장에 맞게 이론을 재단하라는 것이다.
권위 있다고 알려진 이론 체계에 사로잡혀 그것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재단하는 편협한 사고와 인식의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진 권위가 현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자유로운 정신이 온당하게 대우받으며 권장되어질 때 진정한 과학의 발전이 있다.
9. 집단결정의 오류
개인의 편향과 결함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오류를 제어하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방안으로 집단의사결정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의사결정은 모든 분야에서 회의, 토론, 워크샵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어 지고 있으며 다양한 기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집단의사결정이 구성원의 평균 수준의 수행능력과 유사한 정도의 결과가 도출되었으며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있다. 집단토의를 거친 의사결정이 최상의 결과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결과밖에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다수의 의견이 수렴된다면 집단의사 결정이 개인의 의사결정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도출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오류로 인하여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 개인하나의 생각보다 뛰어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커다란 원인으로 인간의 집단 동조현상을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유전적으로 타인과 유사한 행동을 했을 경우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집단에 동조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회색 코뿔소 이론을 제시한 미셀 부커도 코뿔소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이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함을 강조하면서 동질적이고 관료적인 집단의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이 최소화 되도록 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함을 강조하였다.
집단의 판단이 개인의 판단보다 뛰어나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사람은 소외되길 염려할 때 동조한다. 혹은 대중 속에서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을 때 동조한다. 어떤 이유이든 그에게 두려움, 일종의 공포심이 내재되어 있다. -니체-
개인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집단의사결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때 집단의사결정이 의미가 있다(양미경 2010). 그러나 다양하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유형의 서,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소속집단에서 자신이 처한 상대적인 위치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향, 집단동조 현상으로 극단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집단 극화 현상(group polarization)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발생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집단이 아니라 회사의 한 부서 혹은 관점을 같이하는 학회 등과 같이 구성원들간의 유사성이 높은 소집단에서 이런 집단 극화 현상이 매우 잘 일어난다. 더욱이 이런 현상이 나타나도 소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실패하는 소집단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소수 의견을 무시하며, 편향된 사고를 한다. 집단지성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서 개인별 수행능력을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보고되었다. 통상적으로 집단내 평균 수준의 개인 수행능력에 비해 약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집단내 최고의 구성원보다 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나타났다(양미경 2010 집단지성의 특성 및 기제와 교육적 시사점의 탐색).
"집단결정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사용된다"
권위적이며 위계적인 집단에서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을 가장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한다 함은 교묘하게 의사결정과정을 통제하여 자신들의 의사대로 결정이 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집단적 의사결정은 책임의 모호함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문제까지 포함하게 된다.
<계속해서 제2장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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