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sk (한국리스크전문가협의회)] 연재특집기사(5) 제2장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노력

2020. 9. 19. 17:14@ VAR관련 기관

제2장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노력 (계속)

 

김용표 K-Risk 운영위원

kimyp@samsung.com

 

3. 넛지 (Nudge)

 

3.1 자율과 통제의 균형

사회를 관리하는 방식은 인간의 이성을 믿고 자율성을 보장하느냐, 아니면 대중의 이성을 신뢰 하지 못하고 뛰어난 개인이나 소수의 우월한 집단에게 통제를 위임 하는 사이에서 선택을 하게 된다. 강한 통제의 획일성이 적절한 경우, 자유로운 선택이 적절한 경우가 다르며 어느 하나의 선택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선택으로의 변화되었다.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 집단, 대중 집단 모두에게서 편견과 오류가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강한 통제와 자율 양쪽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에 어떠한 방식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때 그 시점에 우연히 들어맞는 집단이나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지 시스템의 우위는 아니다. 이처럼 인간, 인간집단, 앨리트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의 수많은 편향이 작용하고 이로인해 많은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인지심리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게 되었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으로 대표되는 인지심리학자들이 학문적연구를 통해 밝혀낸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이론을 발판으로 행동경제학자인 리차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부드러운 개입’, 또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다소 모순된 개념을 도입하는 ‘넛지(Nudge)’ 이론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개인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예방하기 위해 선별된 ‘선한 선택설계자’들이 충분한 정보와 좋은 가이드를 포함하는 선택설계를 제공함으로써 정부가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다는 게 핵심내용이다.

참고: 넛지 이론 en.wikipedia.org/wiki/Nudge_theory

 

제공되는 선택설계는 경험과 실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상투적인 논리를 단호하게 물리치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바탕을 둔다. 또한 다양한 경험적 검증을 필요로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면밀히 검증된 결과가 현실에서 잘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따라서 신뢰성 있는 피드백은 중요하며 결과에 따라 선택설계를 합리적으로 수정한다. 현실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신뢰성 있는 피드백이 이루어지려면 복잡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해하기 어렵고 측정과 분석에 많은 정보를 수집을 필요로 한다면 결과는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넛지는 복잡하지 않으며 단순함의 극치다. 리처드 탈럿은 항상 ‘쉽게하라’고 강조한다.

 

또한 다양한 검증을 거친 선택설계자라 하더라도 인간이다. 따라서 완벽하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리처드 탈러는 정부가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국민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관료들이 자신만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거나 이익단체들의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공평하지 않고 편향되거나 너무 과도한 힘을 행사할 위험이 존재하며 때로는 그러한 위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넛지는 강제하지 않으며 인간의 자율적 의사결정의 여지를 충분히 주어지게 함으로써 잘못된 선택설계에 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한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 제공되기 어렵다.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교묘하게 설계된 선택설계에 의해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이란 기본적으로 기준의 제시가 불가피 하며 제시되는 기준과 선택 시스템의 미묘한 차이가 많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개입과 자율적 선택이 함께 공존하는 넛지가 탄생된 것이다.

 

3.2 넛지 원칙

넛지는 사람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돕기위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비합리적 의사결정의 편향을 활용한다. 인지심리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인간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유도하는 리처드 탈러의 주장을 언급하고자 한다.

 

리차드 탈러는 넛지에서 최상의 선택 환경을 설계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우선 이익이 나는 방법으로 설계해라. 사람은 손실기피 편향이 있다. 따라서 비용이나 벌칙을 앞세우게 되면 기피하려 한다.
  • 쉽고 단순하게 설계해라. 까다로운 선택도 쉽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쉽게 설계되어야 한다. 사람은 복잡하고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
  • 다양한 선택에 대해 반복 연습이 가능하며(다양한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도록 설계) 연습에 대한 분명한 피드백이 주어질 때 최선의 선택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정량화된 명확한 사실을 볼 때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리차드 탈러가 다음과 같은 선택설계의 기본원칙을 제시하였다.

  • 최소 저항경로를 따르는 디폴트(default)를 지정하라.

사람들은 최소한의 노력을 요하는 방안(최소 저항경로)을 선택할 것이며, 타성과 현상유지 경향이 있어 디폴트(초기설정) 값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디폴트 옵션이 권고되거나 표준처럼 보여 진다면 이를 택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된 디폴트의 지정은 강력한 넛지의 역할을 하게 된다.

  • 오류예상 사람들은 오류가 있다는 가정 하에 발생 가능한 오류를 수용하거나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 피드백 ; 일이 잘되고 있는지 잘못되고 있는지 신호를 보낸다. 규제 이전에 신중한 분석을 하고 사후적으로 어떤 것이 작동하고 어떤 것이 작동하지 않는지 돌이켜 보면서 평가함으로써 그 규제들의 강력한 실증적 기반을 갖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종 정책이 사실을 바탕으로 추진 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 매핑(대입) 선택설계라는 훌륭한 시스템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입을 이해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그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는 옵션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이것을 수행하는 한 가지 방법은 수치로 이뤄진 정보를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위로 환산함으로써 다양한 옵션들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모호하며 복잡한 정량화에 대해서는 RECAP(record, evaluate, compare alternative prices)를 제시한다. 기록하고, 평가하고, 대안간의 비용의 비교를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의 선택능력을 향상 시킨다.
  • 복잡함을 단순화 조직화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보다 친화적이다.
  • 인센티브의 부각 훌륭한 선택설계자라면 사람들이 인센티브로 주의를 돌리도록 조치를 취한다.

3.3 건설산업의 자율과 통제

건설산업의 경우는 어떤가? 자유로운 선택은 제공되지 않는다. 교묘하게 의도하지도 않는다. 엄격하게 강제된 확정설계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부분에 걸쳐 선택설계자들에 의해 확실하게 의도된 확정설계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개입하고 통제한다. 모든 것을 정해준다. 계획서 작성지침. 기준, 세부지침, 시방서, 프로세스, 시스템, 단가, 투입장비, 자재, 인력, 방법, 관리자의 숫자, 경력, 자격조건까지 관여한다. 마치 완벽한 절대자가 있어 건설산업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정해준 것처럼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선택설계자가 선하며 합리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최소한 검증하려는 시도조차도 없다. 확정설계에 대한 피드백도 본질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똑같은 시각에서 지속적으로 확정설계를 강화한다. 물론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자율적 선택은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획일적 통제적 방법이 효과적이고 건설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냐는 것이다. 모든 건설관련 지표, 사회적 인식 그 어느 것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검증되지 않는 선택설계자의 경험과 실증에서 효과적이라고 보기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선택설계에, 자율적 선택의 길을 막아버린 통제로 선택설계자의 오류를 제어하는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사례)

1990년대 도로현장에서 현장 내 절토구간에서 굴착된 토사를 성토구간에 성토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절토구간의 토사는 수분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점토 성분도 함유하고 있어 다짐 시방기준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정상 2,000m3/일 이상의 토사를 굴착해내고 성토를 해야 연관된 구조물 공사, 교량공사, 자재 운반로가 확보되어 공사가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었다. 문제는 성토구간에서 토질의 문제로 노체의 다짐 기준을 확보하기 어려웠고 넓게 펴서 흙을 말린다 해도 비가 한번 오게 되면 3~4일 작업이 중단되었으며 단기간에 롤러 다짐으로 기준을 맞출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감리단에 가서 지금 성토다짐의 품질기준을 맞추면서 공사를 수행 할 수 없으니 우선 검측 없이 성토작업을 수행하여 작업로 확보, 교량이나 박스 구조물을 시공하도록 하겠다며, 지금은 임시성토로 성토작업에 대한 기성은 추후에 재성토해서 받겠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사정을 아는 감리단에서 용인을 하여 공사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낭비되었지만 그나마 용인된게 고마웠다. 만약에 감리단이나 감독기관에서 이를 용인하지 않는다 하여도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 단지 승인자의 선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조물 작업과 토공작업이 병행되면서 수많은 장비들이 성토지반 위를 운행하였고 중간 중간 문제가 되는 곳은 다양한 방식으로 보수하면서 작업로로 활용하였다. 구조물 공사가 마무리되고 작업로로 활용되었던 성토구간을 재성토를 위해 굴착하려고 보니 그동안 수많은 덤프트럭을 비롯한 장비의 이동으로 단단하게 다짐이 되어 있었다. 백호로 굴착이 잘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다짐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여유있게 공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으며 품질기준을 준수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 성토다짐의 시방기준은 확정설계다. 그러나 시방기준만 고집하고 본선구간의 임시성토라는 자율적 의사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작업로 확보는 건기인 가을이 되어야 가능하며, 이로 인해 구조물 공사 지연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연말에 예산소화를 한다며 급하게 마무리 하느라 많은 품질문제를 가져왔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오랜 기간 각종 중장비 이동에 따른 자연적인 다짐효과라는 덤은 없었다.

 

3.4 넛지는 건설산업에 무엇을 말하고 있나

넛지와 건설사업관리에서 유사점은 사람의 합리성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단지 넛지는 강제하지 않고 자율을 보장하고 있으며, 건설산업은 자율을 인정하지 않고 강력한 규제와 통제방식을 택하고 있다는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자율에 대한 차이는 선택설계자(즉 지침이나 규정을 만드는 사람들)를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의 차이에 있다. 넛지에서는 선택설계의 오류에 대한 안전장치로 자율적 선택을 보장하고 있지만, 건설산업에서는 선택설계자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하다. 건설산업에서 이러한 근거없는 신뢰는 한번 정해진 선택설계에 대한 검증시스템이 없어 명백한 오류에 대해서도 개선이 쉽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고객에게 인도하는 것은 최종품질이다. 고객이 원하는 품질기준을 달성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창의적 발상에 따라 쉽고 안전하게 품질을 확보할 수 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시공과정에서 지나치게 세부적인지침과 기준을 만들고 강제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지킬 수 없는 것도 있고 적합하지 않는 지침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인정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지나친 통제가 오히려 최종결과물의 품질을 떨어뜨릴 수 도 있으며, 지나친 관리 통제가 과정에서의 부실을 덮어버리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가끔은 지침과 규제가 개인이나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필자는 지침과 규제를 강화한다고 품질이 좋아지고 안전하게 시공된다고 보지 않는다. 최종 성과물에 대한 지침과 기본적인 가이드를 제시하면 충분하다.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정해진 기준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창조적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역량과 능력 있는 인재들이 유입되고 이러한 인재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건설산업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처럼 강한 규제와 통제는 창의적 인재가 유입될 수도, 성장 할 수도 없다.

 

항상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되는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인재는 없다. 이제는 한발 물러서는 부드러운 개입 넛지가 필요하다.